작년 10월 초, 한 부부가 우리 사무실을 찾아왔다. 남편분이 교통사고가 났는데 뺑소니 혐의를 받고 형사입건이 됐다는 내용이었다.
그들은 이미 인터넷에서 교통사고전문을 표방하는 변호사 사무실을 여러 곳 다녀온 상태였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상담받을 생각에 찾아왔다고 말했다.
사건 개요는 이렇다.
남편 A씨는 추석 명절 연휴 가족과 함께 고향으로 향했다. 밤 11시경 지방도로에 있는 육교 밑을 지나던 중 무엇인가 차량에 걸리는 느낌이 나면서 덜컹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 순간, 룸미러를 통해 뒤쪽을 살폈으나 가로등이 하나도 없는 외곽지역이라 주변은 너무도 어두워 아무것도 식별할 수가 없었다.
아마도 다른 차량에서 떨어진 물건을 밟았다고 여겨 서행하며 차량 기계 고장 여부를 체크했고, 이상이 없다는 판단에 다시 운전하여 밤늦게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장거리 운전으로 인한 피곤 때문에 바로 잠을 청한 A씨는 새벽 4시경 경찰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차로 사람을 쳤다는 말에 소스라치게 놀라 바로 집을 나서 경찰서를 찾았다. 차가 부딪친 건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그 사고로 인하여 피해자가 사망했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말을 들었다.
A씨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 도주운전에 따른 치사 혐의로 입건이 되었는데, 이 법은 사회적으로 매우 위험하고 비난받을 만한 행위를 엄격하게 처벌하기 위하여 제정됐기에 처벌 수위가 일반 형법보다 훨씬 높다.
특히 사망 사고에 대한 법정형은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다. 쉽게 말해 가장 낮은 처벌이 징역 5년일 정도로 강력 범죄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때까지 성실하고 평범하게 직장을 다니며 가족과 단란한 생활을 살아온 A씨에게 뺑소니 도주운전 혐의는 삶을 근본부터 흔들 수 있는 중대한 문제였다.
사건 내용을 듣고 본 변호사가 판단한 바는, 일단 A씨에게는 도주하려는 고의가 전혀 없었기에 특가법으로 처벌받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사건을 담당한 경찰 조사관 생각은 달랐다. 조사관은 A씨에게 뺑소니하려는 고의가 있었다며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로 송치했다. 검찰 역시 처음에는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경찰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건을 좀 더 면밀히 분석하기 위하여 경찰에 보완 수사를 요청했다. 안타깝게도 수사 방향은 무죄 심증이 아니라 차량 동선 등을 더 정확히 파악하여 유죄 혐의를 굳히려는 의도가 더 강해 보였다.
솔직히 쉽지 않은 사건이었다. 그러나 절대로 포기할 수도 없는 사건이었다.
만일 유죄가 인정되면 서두에서 말했듯이 처벌 정도가 너무 높아 A씨가 만에 하나 구속이 된다면 다니던 직장도 잃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사건에 대한 사실관계를 조금만 더 얘기하면, 사망한 피해자 B씨가 만취 상태에서 육교 밑을 무단횡단하다가 갑자기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지는 모습을 CCTV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불과 몇 초 후에 A씨 차량이 누워있는 B씨를 역과하면서 사고가 벌어졌다.
사방이 어두운 지방도로 늦은 저녁, 다름 아닌 육교 밑에 사람이 쓰러져 있을 거라 상상을 할 수 있을까? 또한 사고 장소에는 중앙 펜스는 물론 차도와 인도 사이에도 펜스가 설치되어 있었다.
당시 A씨는 앞좌석과 뒷좌석에 각각 배우자와 아이들을 태우고 고향에 내려가는 길이었다. 음주운전이 아님은 물론 A씨가 살아온 궤적을 봤을 때 사람을 친 걸 알고도 일부러 뺑소니 할 리 없다고 여기는 게 오히려 더 일반적이지 않지 않을까?
사건을 맡은 지 많은 시간이 흘렀다. 심리적으로 위축된 A씨가 직장은 물론 일상에서도 문제가 생길까 우려되어 심리적 관리에도 신경을 썼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 유족과 합의를 이끌어냈고,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며 세심하게 주장을 펼쳐 나갔다.
마침내 사고가 일어난 지 9개월이 흐른 지난 올해 6월, 검찰은 도주에 대하여 ‘혐의없음에 따른 불기소처분’을 내리게 된다. 아울러 이미 합의를 마친 터라, 사망자 B씨 유족분이 이의를 제기할 일도 없어 사건은 그렇게 종결이 되었다.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교통사고 사건은 쉬운 게 하나도 없다는 걸 여실히 느꼈다. 또 한편 교통사고 전문변호사로서 자신감도 내면에서부터 차올랐다.
진정한 교통사고전문변호사가 되기 위하여 신중하고 겸손하되, 의뢰인을 위해 절대로 타협하지 않아야겠다. 아울러 전진을 멈추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오늘 칼럼을 마친다.